고양이의 날, 코코 샤넬, 이태원살인사건 호모루덴스의 pastime





                                                   (홍대앞 상상마당 2층 창문)



아 가을.

아 가을이다. 이젠 확연히 느끼겠다. 밤에는 더 이상 창문을 열어 놓고 자지를 못하겠다. 실수로 요만큼이라도 열어 놓은 날은 어김없이 새벽에 깬다. 목이 칼칼하고 코는 먹먹해 져서. 그대로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가을 냄새가 난다. 그러면 마음은 춤추기 시작한다. 오예. 가을. 내 생일이 있는 가을. 나는 정말로 날짜로 따져 계산해도 가을의 거의 한 복판에서 태어났다. 거의라 함은 내 생일이 10월 16일은 아니나 몇 일차이로 이에 가깝다는 뜻이다. 어쨌든 가을의 축복을 듬뿍 받으며 태어났다고 멋대로 생각해 버리는 나. 고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을. 바람이 불어 낙엽을 날리고 얄미운 하늘은 높아져 가는 아래 내 마음은 한없이 안으로 침잠하는, 그 가을.


 

요 몇 일간 얘기 - 영화.

1. 코코샤넬.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수요일? 목요일? 모르겠다. 아 수요일인가 보다. 오드리 토투가 연기한 코코 샤넬의 환한 미소가 잠들때까지 잊혀 지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묻고 그 상실감에 대한 오기와 열망과 속죄로 탄생시킨 브랜드 샤넬. 천박한 화려함과는 분명히 선을 그음으로써 당대의 트렌드에 맞서며 획기적인 바람을 일으킨 가브리엘 코코 샤넬의 성공 스토리, 아니 휴먼 스토리가 스크린 위에 잔잔하게 펼쳐 진다. 
피에스. 코코 샤넬의 첫 후원자인 발장을 보다가 어느 시점에서 토할 뻔 했다. 
 


2. 이태원 살인 사건.

토요일에 관람. 
영화의 정체성이 모호해 좀 불만스러웠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재현한 완전한 픽션이라면서 끝은 왜 결국 관객의 법감정에 호소, 분노를 촉발하려는 것처럼 보이는지 이해가 안 된다. 픽션으로 갈 거면 누가 범인이며 누가 더 완벽하게 연기를 하며 검사와 당국을 조롱했는지를 완전하게 보여 주는 게 차라리 흥미로웠을 것 같다. 이를테면 (비교는 안 되겠지만) 유쥬얼 서스펙트처럼 반전을 노린다든지, 추격자처럼 처음부터 다 보여주고 긴박감있게 만들든지 둘 중에 하나가 더 나았을 것 같다 이말이다. 사실 법이나 사법시스템을 다 아는 사람들에게 있어 기본적사실동일설에 입각한 공소사실의 동일성에 의한 공소장변경제도와 이에 따른 기판력이 미치는 범위에 의한 결과는 모두에게 다 유리한 결과이며 이는 잠재적 피고인(?) 인 일반 국민에게도 마찬가지로 좋은 제도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이태원 햄버거 살인사건에 있어 (영화에 나타난 사실로만 판단해 본다면) 두 명이 모두다 살인죄의 정범은 아니라는 전제 하에 각각 살인죄 정범과 기타 증거인멸 등의 죄로 기소하고 후에 충분히 공소장변경이 가능했음에도 그대로 진행시킨 것 자체가 검사측의 실수이긴 하다. 그런 결과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 번 받은 재판의 기판력이 같은 사실관계인 증거인멸 등에 미치는 것은 비단 한국의 사법제도의 헛점만은 아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자막에는 피어슨과 알렉스 정이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유유히 한국을 빠져 나갔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리고 화장실 벽에 기대 쓰러진 죽은 피해자의 처참한 시신과 공허한 눈을 클로즈업하면서 끝난다. 그러면 이 영화가 한국 당국과 검찰을 고발하고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검사를 향한 카메라의 시선은 지극히 따뜻하다 못해 몇 몇 대사들은 아주 손발이 오그라들정도로 짜증나게 검사에게 호의적이다.  
피어슨이 모호하게 썩소를 날리는 것도 별로 여운을 주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알렉스 정이 여자친구에게 읊조리는
I'll show you something cool, come with me 도 쓸 데 없다.
이것 저것 다 섞어 놓고 모든 걸 관객에게 다 떠넘긴채로 니네가 알아서 생각해 봐. 하는 건 좀 우습다. 글로 치면 Thesis statement 가 뭔지 도저히 파악이 안 된다는 말이다.
암튼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이래 저래 산뜻한 맛은 없는 영화였다.
게다가 장근석은 외국에서 살다 왔다면서 영어를 왜 그따
물론 돈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든다. 재미있다. 보세요.


3.
어글리 트루스

역시 같은 날 관람. W는 무슨 영화를 두 개나 연달아 보냐고 신기해 했지만 ㅎ ㅏ 난 예전에 아침 여덟시부터 밤 열한시 사십분까지 하루 종일 영화만 본 적도 있단 말이다. 나랑 데이트 할라면 익숙해 져야해 baby.
결론부터 말하면 아주 배꼽빠지게 유쾌한 영화다. 물론 제라드 버틀러의 팬인 내게 객관성을 기대하지 마시라.
그치만 같이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 전부 다 웃느라고 정신을 못 차렸다.
난 차라리 이렇게 유쾌하고 아무런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대놓고 로맨틱 코메디에요 하는 영화가 사랑스러워 좋다.
불편한 진실? 글쎄. 그 트루스라는 게 그닥 어글리하진 않다. 이봐 왜 그래. 프로끼리. 큭.
진짜 불편한 진실을 알려 줄까?
seduction and manipulation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사랑이다. 그게 진실인 거지.





고양이의 날 행사 마지막날.

길고양이로 유명한 블로거 고경원님이 주최한 제 1회 고양이의 날 행사 마지막날인 토요일에 겨우 짬을 내서 갔다.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라는 책도 내신 (블로그의 글을 엮은 형식) 고경원 님의 이글루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고양이를 미워하는지 모르겠다. 그네들은 그저 그네들로서 존재할 뿐이건만 음흉한 인간이 그들에게 음흉한 태그를 덧입혀 놓았다.
내가 상상한 고경원님은 작은 생명에게도 너그럽고 오히려 약한 자에게 사랑을 특별히 더 많이 베풀 줄 아는 진정한 용자의 이미지였다. 실제로 만나 뵈니 행동가보다는 사색가에 더 가까웠다. 긴 머리를 단정하게 늘어 뜨리고 눈부신 창가에 앉아 부지런히 길고양이들 사진에 종이 액자를 씌우는 작업을 하고 계셨다. 





                                           (왼쪽에 머리 일부와 손과 다리만 보이는 분이 고경원님)


사진을 몇 장 찍고 예쁜 길고양이 사진을 업어 가기 위해 (행사 내용 중 하나였다. '길고양이와 친구 맺기'.) 고경원님께 말을 걸었다. 목소리도 참 차분하셨다. 저는 고양이가 좋은데 길고양이들은 절 무서워해요. 가까이 가면 도망가거나 경계해요.힝. 그럴 때는 눈을 똑바로 마주치치 말고 딴청 피우는 척하면서 다가가 보세요. 경원 님이 충고해 주셨다. 히히.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 라는 책 중에서 특히 작고 까만 '가회 고양이'에게 마음이 갔더랬다. '작고 약한 몸인데다가 검은 고양이에 따라 붙는 편견까지 견뎌낼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려왔다'는 부분에 특히 내 마음도 아팠더랬다. 그래서 경원님이 마음에 드는 아이로 골라 보라고 하셨을 때 주저 않고 가회 고양이 사진을 선택했다.




                                              (경원님이 직접 찍으신 가회 고양이. )

                             
행여나 돌에 맞아 다리가 부러지지 않았을까 늘 걱정이 된다. 말괄량이 같은 까만 고양이. 너희가 뭐라고 하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람- 하는 것 같은 까만 고양이. 윤기 나는 검은 털을 가진 이쁜 고양이. 난 혼자 살게 됐을 때 까만 고양이 키울 생각에 들뜨곤 한다. 사람들이 검은 고양이를 왜 그렇게나 싫어하는지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내 눈에는 보석같이 빛나는 이쁜 아이인데.





가을이 되면.

주체할 수 없이 마음이 풍요로워 진다. 별로 가진 것 없어도, 아침에 얼굴로 맞는 시원한 바람과 위세를 잃어 가는 낮동안의 더위와 이에 따라 함께 수축해 가는 공기와 재미있는 일터와 그리고 맛있는 음식, 맛있는 커피, 맛있는 초콜렛, (;;;;) 맛있는 음악과 피아노, 맛있는 애인 (헉;;) ,맛있는 일상과... 침 흘릴 수 있는 택연이만 있으면 펄풱한 가을이 완성됩니다. 끝.


피에스. 또 어젯밤 꿈에 옥택연이 나왔다.






백지영씨. 전생에 무슨 공을 그리 쌓았길래.

피에스 투. 동생한테 그랬다. '탑군이랑은 연애하고 싶고 옥택연이랑은 결혼하고 싶소.'
그랬더니 동생이 그런다. '누이, 쇠고랑을 더블로 차봐야 정신을 차리시겠소.'
죽을래.


피에스 뜨뤼. 밸리 어디로 보낼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영화 얘기가 젤 많으니 영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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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숲고양이 2009/09/15 16:36 #

    뭔가 종합적인 글에 고양이의 날 이야기도 있어서 슬며시 끼어들어봅니다.
    마지막 날 와주셔서 반가웠습니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얼굴들을 본 기분이에요.
    저도 '길고양이 친구 맺기' 같은 행사를 자주 할 수 있음 좋겠네요.
  • Scully 2009/09/16 12:03 #

    아! 고경원님! 정말 반가웠어요.
    정말루 그런 행사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
    직접 뵙게 돼서 영광이었습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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